건강은 타고 나는 것일까요?
얼마 전에 바이오 분야 연구자와 오랜 시간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과 얘기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살면서 유전자를 좋게 바꿔가는, 즉 건강 유전자 만들기 비법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건강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과학 연구는 이 고정관념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후성유전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 학문은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변하지 않지만, 유전자의 발현 방식이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연구합니다. 건강이 유전자에만 의해 결정되지 않고, 우리의 생활습관과 환경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거죠.
삶은 노화 과정
노화 과정에 어떤 “변수”는 건강을 좋게 하거나 나쁘게 할 수 있습니다. 각종 연구에 의하면 크게 4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타고난 유전자/DNA, 생활방식, 환경, 식습관 등이 그것입니다. 이 변수들의 영향을 비율로 나타내는 것은 매우 복잡하지만 현재의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평균 비율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DNA: 25% (유전적 요인)
- 생활방식: 30%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흡연, 사회적 관계 등)
- 환경: 20% (대기 질, 수질, 화학물질 노출, 직업환경 등)
- 식습관: 25% (영양섭취, 음주 등)
DNA가 1등? NO!
이들 4가지 변수는 불변인 것도 있고 일시적인 것도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 4가지 변수가 상호작용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이었던게 상황에 따라서는 영원한 게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유전자 발현 연구 및 후성유전학의 발전으로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알려졌었습니다. 그러니까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여 식성이나 운동 성향, 수면 상태 등을 조절한다는 관점이었죠. 이젠 반대로 식습관, 운동상태, 수면 등이 DNA에 영향을 주어 유전자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죠. 변수를 조절하면 건강 유전자를 만들어서 내가 평생 써 먹을 수도, 심지어 아이에게 유전해 줄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건강에서 유전적 요인은 매우 미미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의 이기헌 교수는 암의 발병에 있어 유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유방암이나 대장암과 같이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발병된다고 알려진 암조차 그 비율은 5%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건강은 전적으로 유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걸까요? 이 교수는 “암의 15~30%는 흡연 때문에, 또 다른 30%는 식습관과 같은 생활 방식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가족 중에 비만이 많다면 ‘나도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차병원의 이윤경 교수는 “비만의 90%는 많이 먹고 덜 움직이는 것에서 비롯된 일차성 비만”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비만 유전자가 있더라도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그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후성유전학
여기서 말하는 것은 유전자 자체는 바뀌지 않지만 유전자의 기능, 즉 발현(expression)은 평생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외부 환경에 의해서 변화하고 심지어 그 변화는 다음 세대로 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유전학을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고 합니다.